인권으로 읽는 세상
공공철도를 향한 철도노조 파업을 지지하며

기차역 표지판. KTX, ITX 새마을, 무궁화 탑승을 알리는 표지판이 있다. 사진 언스플래시
기차역 표지판. KTX, ITX 새마을, 무궁화 탑승을 알리는 표지판이 있다. 사진 언스플래시

엄마는 남원과 서울을 수시로 오간다. 몇 년 새 여러 수술을 했지만 남원이나 인근 도시에는 안정적으로 검사와 치료를 받을 수 있는 2․3차 병원이 부족하거나 아예 없기 때문이다. 아픈 몸도 괴롭지만, 새벽부터 저녁까지 하루를 이동과 대기에 써야 하는 상황도 괴롭다. 1시간 간격으로 운행되던 고속버스가 절반으로 줄어든 이후에는 괴로움도 배가 됐다. 병원 동행에 나설 때마다 줄어든 운행에 분노하는 내게 엄마는 체념하듯 말한다. “사람도 없고, 돈이 안 되니까….”

- ‘교통’을 지배해온 시장원리

“공공철도를 향합니다.”

9월 14일부터 18일까지 1차 총파업에 들어가는 철도노조의 기자간담회장에 걸린 현수막 문구를 보며, 나는 ‘엄마와 같은 사람들’을 떠올렸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는 KTX 고속철도 운영을 통해 얻은 이익을 무궁화․새마을호와 같은 일반철도의 적자를 메꾸는 ‘교차보조’에 사용하지만, 수서행 SRT를 운영하는 ㈜SR은 그 이익을 주주들에게 나눠준다. 철도노조는 ‘경쟁체제’ 도입을 명분으로 KTX를 운영하는 코레일과 SRT를 운영하는 ㈜SR이 분할된 이른바 ‘철도 쪼개기 10년’이 철도교통망의 공공적 기능을 후퇴시켰다고 말한다. 승용차로는 이동할 수 없는 사람들, 특히 지역의 고령․저소득․교통약자 집단에 이동력을 제공하는 것이 바로 코레일의 무궁화․새마을호라는 점에서 이들의 이동권 보장이 ‘공공철도’의 주요 방향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모두의 삶을 지키는 공공성’을 내건 철도노조의 파업은 우리에게 ‘사회취약계층’의 이동권을 충분히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 ‘너머’를 보게 한다. 바로 ‘철도 쪼개기’를 가능하게 했던 한국사회의 지배적 원리가 무엇이었는지, 그 원리가 기존 한국사회의 불평등과 위험을 어떻게 키워왔는지다.

시장에서의 경쟁을 통한 수익성 확보는 지금 한국사회에서 ‘교통’의 사회적 의미를 지배하는 대표적 원리다. 고령층의 무임승차 폐지·축소 여론이 끊이지 않는 것처럼 교통약자를 포함한 시민들의 이동권은 ‘구매력’을 기준으로 쪼개져 왔다. 정부는 지방소멸 위기라며 호들갑을 떨면서도 ‘효율성’을 앞세워 지역주민들 삶에 필수적인 사회기반시설을 확충하기보다 무궁화호 축소 운행과 철도역 폐쇄에 더 빠르게 움직였다. 2018년 강릉선 KTX 탈선부터 작년 오봉역 철노노동자 사망까지 사회적 재난은 계속 증가하고 있지만, 코레일의 만성 적자를 이유로 한 ‘유연화’ 앞에서 노동자와 시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대책들은 한없이 뒷걸음질만 반복해왔다.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전 세계적인 과제 앞에서도 정부는 ‘전략산업화’라는 이름으로 도로 건설 및 자동차 산업에 열을 올리며 ‘민간주도 경제’의 효율성과 합리성이라는 환상을 채우고 있을 뿐이다.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철도공공성을 촉구하며 철도노조가 릴레이 피케팅을 하고 있다. 사진 철도노조 

- 시장 경쟁의 부족? 코레일의 적자와 부채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교통 및 도시개발을 포함하는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적 경제’는 여야를 가릴 것 없이 한국사회 역대 정부의 철도 쪼개기의 역사에도 고스란히 녹아있는 기조다. 2016년 12월, 코레일 ‘독점 체제’를 끝내고 ‘철도 경쟁 시대 개막’을 알리며 수서고속철도 SRT가 개통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 이르러 철도 경쟁체제가 코레일의 경쟁사업자인 ㈜SR 분할설립으로 완성된 결과다. 철도 운영에서 코레일-㈜SR로 분할한 것이 철도의 ‘수평분리’라면, 애초 구조적인 ‘상하분리’가 이루어진 것은 바로 ‘철도구조개혁’을 추진했던 참여정부에서다. 2004년 철도청을 통해 국가가 직접 관리하던 철도의 건설과 시설관리(하)가 한국철도시설공단으로, 철도 운영과 유지보수(상)가 코레일로 분리되었다. 시설-운영 분리에 이어 운영 내에서도 경쟁체제를 도입해 철도구조개혁을 완성해야 한다는 것이 2013년 ‘철도 쪼개기’의 밑그림인 셈이다.

하지만 당시 김성희 교수의 지적대로 코레일의 만성 적자와 부채는 독점 지위로 인한 ‘방만 경영’이 아니라 일반철도 운영으로 시민들의 이동권을 보완해 온 ‘철도 공공성 실현의 대가’다. ‘1,417억 원 적자’는 ㈜SR 설립 시 코레일이 받게 될 영향분석을 통해 이미 예측되었다는 점에서, 경쟁체제는 평등하고 공평한 이동 분배의 실패를 예견한 것과 다름없다. 게다가 ‘황금노선’이었던 SRT 운임을 ‘KTX 고시운임 90%’로 10% 낮게 책정했으면서도 철도의 공공적 성격을 유지하기 위한 지출 부담을 ㈜SR은 전혀 부담하지 않고 있다. 이는 ‘경쟁체제’가 아니라 국가의 ‘편향적 특혜’였다. 불공정한 구조 속에서 만들어진 코레일의 적자와 부채, 이로 인한 경쟁과 운영 압박은 일반철도를 유지개선하면서 이동권을 보장하는 것, 철도노동자 인력의 충원 및 노동조건을 개선하면서 교통안전을 확보하는 것을 우선순위에서 계속 삭제한 배경이 되었다.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으로서 통합성과 연계성이 중요한 철도 사업이지만 정부 주도하에 쪼개기가 한창이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의 ‘삼권분립’ 기조하에 시설유지보수, 물류 및 차량, 관제권을 분리하는 방향이 진행되고 있다. 올해 4월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철도산업법’ 개정안처럼 국가 소유의 철도 시설유지보수업무를 민간사업자에게 여는 입법 시도 또한 이어지고 있다.

공공철도를 둘러싼 논쟁은 철도와 같은 네트워크 산업을 국가 혹은 민간 중 누가 담당하는 것이 더 효율적인지에 대한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철도 쪼개기’의 조건에 ‘시장경쟁이 합리적’이라는 인식이 국가에 의해서 주창되고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관계 전반을 조직하는 원리로서 받아들여지게 된 과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경쟁체제는 당대 철도교통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해소하기 위한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대안이었기 때문이라기보다, 경쟁을 통한 생존이 합리적일 뿐만 아니라 요금 할인 및 서비스질 개선 등 공공의 이익에 부합할 것이라는 사장중심 경제 원리가 관철되는 과정을 통해 그 힘을 이어왔다. 하지만 철도 쪼개기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지금, 그 원리는 다시금 철도노조 파업을 계기로 도전받게 된 셈이다.

- ‘교통’은 어떻게 한국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강화해왔나

2017~2021년 4년 동안 코레일의 경부선, 호남선, 중앙선, 무궁화호 노선 36%가 감축 운영되었다는 사실이 국정감사를 통해 알려진 적이 있다. 이는 당시 철도교통의 사각지대로 인한 서민들의 이동권 제약 차원에서 논란이 되었지만 새삼스러운 ‘현상’은 아니다. 1989년에도 이미 경부선은 상․하행을 합쳐 112대가 운행되었지만 호남선은 4분의 1 정도인 28대에 불과했고, 2018년까지도 8개 도와 특별시․광역시 중 대중교통 취약지역의 92.9%가 전라북도에 속해 있다. 근래의 전국적인 무궁화호 노선 감축은 한국사회 역사적이고 구조적인 지역불평등․불균형이 수익성 제고라는 명분을 통해 다시금 지역․계층 불평등으로 강화되어 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징표다. 이는 철도교통 정책에서 동서를 포함한 지역 간선철도망의 확충, 중소도시 내에서 철도와 다른 공공교통수단의 효율적인 연계를 포괄해야 한다는 요구가 계속 제시되어온 이유이기도 하다.

게다가 도로 건설 및 자동차 산업 중심의 교통체제는 기존의 불평등을 고착화시킬 뿐 아니라 기후위기 시대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불투명하게 하고 있다. 사람들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의 분포 비율(수송분담률)은 2020년 기준 승용차가 69.5%,로 압도적이지만, 버스는 15.0%, 철도는 단 12.8%만을 차지한다. 정부는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전기․수소차량 보급과 철도교통 이용 전환을 모두 이야기하지만, 동시에 전기자동차를 굴리기 위한 전기 생산을 원자력 확대 및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건설로 채운다. 탄소중립 달성 목표는 철도의 수송분담률을 47.5%까지 끌어올려야 가능하지만, 철도 인프라 구축과 교통체계 전환에는 무관심하다.

전국에서 소비되는 전기를 생산하는 화력발전소들은 충남에만 50%가 몰려있다. 하지만 전기자동차 보급을 지원할지언정 충남도민들의 이동권을 보장하는 지표로서 저상버스의 보급률은 전국 평균의 반절에도 못 미치는 10%대에 머물러 있다. 이런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까? 대도시 교통비 지출 현황에서 자가용족의 81.4%는 남성이, 대중교통에서 80.0%는 여성이 차지하는 압도적인 비중의 성별 격차는 그저 도로 중심의 교통체계를 가진 국가의 자연스러운 현상일까? 대중교통 요금이 인상되면 가장 크게 타격을 받는 계층이 청년 세대, 그것도 여성 청년으로 나타난다는 연구결과는 점은 ‘공공교통’이 단순히 교통수단의 선택과 접근성에 국한될 수 없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철도의 눈물』의 저자 박흥수의 지적처럼 한국사회 교통 현실에는 지역․계층․성별 불평등 구조가 녹아있는 것이다.

9월 14일 전국철도노동조합은 지부별로 총파업에 들어갔다. 부산역광장에서 열린 철도노조 파업 출정식의 모습. 사진 철도노조 
9월 14일 전국철도노동조합은 지부별로 총파업에 들어갔다. 부산역광장에서 열린 철도노조 파업 출정식의 모습. 사진 철도노조 

- 이동성의 권리에 기반한 공공교통체계

지속가능한 교통체제로의 전환을 위해 이동성 권리장전(Mobility Bill of Rights)을 제시한 다니엘 뉴먼은 개인 소유의 승용차보다 현대의 소비자 자본주의를 드러내는 강력한 상징은 거의 없으며,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교통을 이해하는 방식’을 재개념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동성’을 권리로 이해하는 것이다.

교통의 공공성은 지금까지 ‘접근성’을 중심으로 논의된 바가 크다. 이동이 시민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력은 자신에게 주어진 교통수단의 종류와 서비스에 따라 노동, 주거, 보건의료, 교육, 돌봄 등 필수적인 사회경제적 활동이 결부되고 이에 따라 ‘인간다운 삶’의 수준과 질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교통에 대한 접근권은 이윤을 중심으로 한 자본의 논리에 구속되지 않아야 한다는 공공적 성격이 강조되어 왔다. 하지만 승용차-대중교통 사이의 위계와 사회불평등 구조 속에서 ‘인간다운 삶’을 위해 시민 모두에게 승용차에 대한 접근성을 확장하는 방식은 정의롭지도,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현대 사회에서 필수적인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필요를 충족할 수 있는 적정가격의 교통수단(affordable transportation)을 이용하면서도, 승용차를 이용할 수 없어서 사회로부터 단절되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겪지 않을 권리, 우리 자신을 포함한 사회구성원들의 건강과 지역 환경, 기후를 위협하지 않는 교통수단을 이용할 권리, 민주적인 방식으로 모두의 이익에 이롭고 효율적인 대중교통 시스템을 요구하고 이용할 권리, 즉 ‘이동성의 권리’가 바로 지금 이 시대의 ‘사회공공성’의 중심축이 되어야 한다. 공공철도가 불평등과 기후위기라는 맥락에서 이동권에 중점을 두는 교통체계 전환의 핵심수단으로 등장한 이유는 바로 그것이 지금 이 시대에 절실한 ‘사회정의’를 향하기 때문이다.

- 국가의 책임이 삭제된 자리에서

2011년 출간된 폴 버카일의 『정부를 팝니다』는 민간기업 없이는 기능할 수 없게 된 미국 사회의 흐름을 다루고 있다. 원제인 ‘주권의 아웃소싱’(Outsourcing Sovereignty)은 공공성 문제가 단순히 공기업의 소유관계나 요금인상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국가가 수행해야 할 최소한의 핵심적인 역할마저도 부정하게 된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어떻게 위협받는지를 짚고 있다. 한국사회도 마찬가지로 시장․경쟁․효율이 지배하는 시대에 공공교통을 상상하는 것도, 그에 대한 국가의 핵심적인 역할을 질문하는 것도 점차 낯선 풍경이 되어왔다.

윤석열 정부에서 철도통합을 거부하는 이유에 거대 철도노조의 ’파업 대비’가 있다는 사실은 이번 파업 역시 다시 한번 힘겨운 싸움이 될 것을 예감케 한다.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과정에는 보편적인 권리, 사회구성원들의 공동의 이해를 구성하고 요구하는 과정에서 공중(the public)의 목소리를 매우 체계적으로 삭제하는 행위가 포함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장논리가 우리 사회와 관계를 지배해 온 시간을 전환하고, 이윤을 목적으로 한 자본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공공성’을 위해 싸울 몫을 모두 철도노조의 어깨에 얹을 수만은 없다. 교통의 공공성을 높인다는 것은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기존 사회구조를 어떻게 재편할 것인가의 문제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공공교통체계는 관료와 전문가 중심이 아니라, 모두의 권리에 복무하는 ‘공공교통’을 만드는 과정에 ‘자기 정치’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참여와 조직을 통해서 민주적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2013년 철도노조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탄압이 극에 달한 시기, ‘안녕들 하십니까’를 물으며 부당함을 더 이상 침묵할 수도, 외면할 수도, 도망칠 수도 없으니 함께 하자고 했던 제안을 떠올린다. 그리고 수없이 이어졌던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의 터져나오던 응답들을 떠올린다. 2023년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이동권 투쟁을 바라보며 이동권이 존엄과 인권의 문제라고 외친 사람들, 기후위기 시대 더 많은 자동차가 아니라 공공교통을 요구하는 사람들, 그리고 돈이 안 된다는 말을 스스로에게 되뇌었던 ‘엄마와 같은 사람들’이 철도노동자와 함께 각자의 자리에서 싸울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