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다양인의 삶은 배를 타고 떠나는 여정과도 같다. (C) pixabay
신경다양인의 삶은 배를 타고 떠나는 여정과도 같다. (C) pixabay

중증정신질환 중의 하나인 조현형 성격장애를 진단받은 순간을 떠올려보면, 당황스러움과 충격의 연속이었다. ‘Schizotypal’이라는 철자를 구글에서 검색해보고 그것이 뜻한 의미를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내가 정말로 ‘미친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여지껏 나를 괴롭힌 동급생들과 사회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정말로 잘못된 것은 나였을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그 충격이 실로 커서 나를 진단하고 치료한 전문의에 대한 불신과 피해사고로 이어질 정도였다.

나는 결국 죽음을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생각하고 마지막으로 유서나 쓰자는 심정으로 나의 솔직한 심경을 인터넷에 투고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돌아온 답변은 당신은 미쳤다는 말도, 잘못된 건 너라는 말도, 그러니 죽어야 된다는 말도 아니었다. 바로 망가진 상태에서도 ‘새로운 균형’을 찾으라는 말씀이었다.

그 순간부터 조현형 성격장애는 더 이상 낙인이 아니었다. 나를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시켜 준 열쇠이자 날개가 되었다. 나는 정신장애 및 발달장애 인권 활동가가 되기를 선택했고 이후의 삶은 180도 달라졌다.

어쩌면 누군가는 살면서 한 번쯤 정신질환을 진단받게 된다. 우울증, 조울증, 조현병, 성격장애… 진단명은 무엇이든 좋다. 그러나 정신장애 정체성을 맞이하기 전 꼭 거쳐야 하는 단계는 그 진단명과 대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진단 전에 막연하게만 생각해 왔던 여러 다양한 병명 중의 하나가 나 자신과 진료기록에 따라붙는다는 건 마냥 좋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이미 그 진단에 속할 것임을 직감하고 마음의 준비 끝에 후련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이상, 모든 당사자가 혼란스러운 과정을 겪게 된다.

어떤 당사자는 애써 부정하기도, 어떤 당사자는 의사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기도, 어떤 당사자는 자신을 병원에 데려간 가족들을 원망하기도 한다. 어떤 당사자는 진단명을 이해하는 것조차 어려울 수도 있다.

당사자들이 제각기 혼란과 좌절과 절망에 빠진 순간에도 시간은 흐른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지 않는 이상 흘러가는 시간에 삶을 맡겨야만 한다. 당사자는 삶이 멈춘 것만 같은데, 시간은 흘러가고 나는 늙어가고 어김없이 배고픔은 찾아온다.

힘겨운 시간은 정신질환 진단으로 끝나지 않는다. 강제입원, 해고와 실직, 인간관계의 단절, 자살 시도의 실패, 정신장애 판정까지 계속될지 모른다. 커다란 사건 사이사이에도 견디기 싫은 사소한 짜증과 스트레스가 겹겹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감히 살아보라고 말하고 싶다. 힘들고 고통스럽고 좌절스러운 순간을 겪더라도 삶은 계속되며, 계속되어야만 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 근거가 무엇이냐고 묻느냐면 내 삶을 말할 것이다. 빈곤, 집단따돌림, 성폭력, 부당해고, 정신장애까지 모두 겪었지만 나는 지금 내 삶을 사랑하고 만족하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청소년 시절 집단따돌림을 당하며 매일매일 죽음을 갈망했던 순간, 20대 초반 성폭력과 성적 저하, 사이버불링을 겪고 자살 시도를 했던 순간에 정말로 죽었더라면, 지금의 내가 겪는 빛나는 순간들은 영영 오지 않았을 것이다.

인생은 그야말로 한 치 앞도 모른다. 내 앞에 놓인 순간이 최악의 순간일 때도 있지만, 그럭저럭 버틸 수 있는 것도, 썩 좋은 순간도, 아주 좋은 날도 오지 않을까?

2년 전, ‘신경다양한 세계’ 시리즈를 시작할 때 꺼냈던 이야기를 2년 후 마지막 편에서도 꺼내보았다. 그만큼 ‘새로운 균형’은 내 삶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2년 동안의 칼럼 시리즈에서 한결같이 말해왔고, 앞으로도 여러 매체와 다양한 활동을 통해 이야기하고 전할 메시지이기도 하다.

‘신경다양한 세계’ 시리즈와 나의 궤적이 많은 신경다양인들에게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과연 충분했는지 걱정이 된다. 아직 못다한 이야기도 너무 많다.

에이블뉴스 ‘신경다양한 세계’ 시리즈는 일단 이 편을 끝으로 마무리 짓지만, 나는 앞으로도 다양한 매체에서 글을 계속 쓸 것이다. 정신질환 진단 이후에도 삶을 계속 살아오며 많은 것들을 이루어냈듯, 에이블뉴스 연재가 종료되더라도 나는 정신적 장애인의 삶과 희망에 대해 노래할 것이다.